메인 컨텐츠 영역으로 이동
:::
1723 1795 1824 1860 1885
1723

「단수이청」설립

단수이청(淡水廳)의 설립이 「단」란의 기점으로 당시 대만의 발전이 이미 남으로부터 북으로 확대되었음을 말해준다.

1795

브랜즈가 북(北), 중로(中路) 두 길을 개발

놘놘(暖暖)에서부터 싼댜오링(三貂嶺), 딩솽시(頂雙溪, 평포족이 사냥하면서 생긴 산길)까지, 후인들에게는 브랜즈가 단란고도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1824

황팅타이(黃廷泰)가 사람들을 이끌고 입산하여 개간

황팅타이(黃廷泰)는 터우웨이(頭圍)에서 타이핑(泰平)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개간하다가 이곳이 매우 넓고 평탄한 지형임을 알고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개간을 시작했다. 구릉지라 녹나무를 벌목하고 평탄한 하천가에 벼와 고구마 등을 심었는데 이는 이후 현지 주민들의 주요한 경제작물이 되었다.

1860

대만의 개항과 통상

청조정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단수이와 지룽 등 항구를 개방하고 통상하여 대만의 경제 무역에서 점차 엽차가 대종이 되었다. 이로 인해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간접적으로 단란 남로(엽차길)의 개척이 이루어졌다.

1885

류밍촨(劉銘傳) 순무가 단란보도를 개척

1885년 대만성을 건립하고 류밍촨(劉銘傳)이 첫 대만순무(臺灣巡撫)를 역임했다. 엽차가 가져온 경제성장에 따라 관청에서도 단란보도의 개척공사를 강화하였다. 이 노선은 거마란까지의 여정을 대폭적으로 단축시켰는데 현재의 타이베이와 이란 간의 중요 교통로가 되었다.

단란 백년의 산길

200년을 넘나드는 역사를 가진 단란(淡蘭) 백년 산길은 대만의 청조시기 북부의 「단수이청(淡水廳)」에서 출발하여 동부의 「거마란청(噶瑪蘭廳)」까지 오가는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풍경과 오랜 역사를 가진 인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최근들어 정부와 민간이 합작하여 손으로 만든 보도 공법으로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도를 수리하여 2018년에 「북로(北路)」, 「중로(中路)」, 「남로(南路)」 세 가지 노선을 정비했다. 단란고도는 현재 「국가급 녹색 보도」로 지정되어 있다. 풍부한 인문역사와 환경생태 이외에 구역내 테마여행 노선과 연결되어 초보 등산객이나 탐험가를 막론하고 자기에게 맞는 구간을 선택하여 독특한 단란의 매력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생긴 관광명소는 출국하지 않고도 대만에서 「국제급」의 장거리 보도의 하이킹 체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단란으로 가 보자

전 대만에서 처음으로 손으로 만든 공법의 보도

현지에서 재료를 구해 주변생태와 문화에 맞는 공법으로 보도를 보수하고 정비
현지의 문화, 자연특색과 결합하고 독특한 표식 시스템을 가진 장거리 보도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