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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자(艋舺)는 오늘날의 완화(萬華)로 초기 핑푸족(平埔族)이 카누로 농산물을 운반해와 교역하던 곳으로 「카누」는 평포족어로 발음하면 「망자(蟒甲)」와 비슷해 한인들과 교역하던 시장을 「멍자」로 칭하게 된 것이다. 과거 타이난(臺南) 안핑(安平), 장화(彰化) 루강(鹿港)과 함께 「1부(府)2루(鹿)3멍자(艋舺)」로 불리었고 단란고도의 기점도 이곳 멍자에서 시작해 이란(宜蘭)까지 이어진다.
다다오청(大稻埕)은 과거 곡물을 말리는 큰 마당이어서 얻은 이름이다. 단수이항(淡水港)이 개통된 후 가게들이 들어서자 다다오청은 엽차, 옷감, 한약재 등이 교역되는 중심지가 되어 외부상인들이 대만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현재의 다다오청내 디화가(迪化街)에는 여전히 당시의 화려한 바로크식 붉은 벽돌 서양건축이 남아있다.
양호한 거주환경과 녹화공원을 가진 쑹산구(松山區)는 지룽하(基隆河)가 굽어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시커우(錫口)」라고 불렸는데 민남어로 발음하면 바로 「강이 굽어지는 곳」이다. 하천과 철도가 경과하기 때문에 이른 시기 북부의 중요한 하구와 중계소 역할로 많은 물자가 이곳을 통해 타지역으로 운반되어 갔다. 대만의 첫 공항인 쑹산공항이 세워진 후에 쑹산구는 금융과 산업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타이베이 네이후과학기술원구」의 성립은 네이후(內湖)의 왕성한 발전을 가져와 전신컴퓨터과학기술산업체들이 이곳에 본부를 설치하면서 주택과 상업빌딩이 초고속으로 지어지고 있다.
지룽하 이남에 위치한 난강(南港)은 선민들이 배로 화물을 운송하고 교역하던 중간지점으로 과거에는 기차역이 있어 수상교통과 육상교통의 발달로 난강의 번영을 이루었다. 이후 지룽하가 낮아져 난강은 점차 중공업구로 변했고 다시 오늘날의 스마트경제무역원구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구팅(古亭)은 짙은 문화교육의 회고풍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1946년 여기에 설립된 사범대학은 대만에서 중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첫 학교로 오늘날의 대만사범대학이다. 구링가(牯嶺街)의 옛날서적과 신문판매대는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 학생들과 학자들이 신지식의 보물을 캐던 곳이다. 샤먼가(廈門街)는 중고전자제품매매 거리이고 난창가(南昌街)는 가구가 밀집된 상권으로 주택용 가구나 사무실용 가구 등을 이곳에서 한 번에 구매 가능하다.
지하철의 개통은 궁관(公館)상권에 대량의 인파를 몰리게 했는데 옷가게, 안경점, 특색서점, 운동용품에서 문학청년들의 카페, 전통간식과 이국요리식당에 이르기까지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다. 봄에 루즈벨트로(羅斯福路)를 지나 대만대학 부근을 지나가다보면 대만대학교 철쭉꽃축제를 만나게 되는데 캠퍼스 전체에 각색의 철쭉꽃이 만발하여 아름답기가 이를 데 없다.
징메이(景美)에는 중요한 하천으로 징메이계(景美溪)가 있는데 신뎬계(新店溪)의 지류로 원래 이름은 「우리쉐계(霧裡薛溪)」로 핑푸족어로 「아름다운 시내」라는 뜻이다. 당시 징메이는 시내물을 끌어들여 관개시설인 「우리쉐도랑」을 만들었는데 이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먼저 만든 물도랑으로 잘 알려진 류궁도랑(瑠公圳)보다 더 이른 시기이다. 징메이계는 타이베이 분지에 농경관개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선민들이 엽차, 석탄, 농작물 등을 운송하던 물길로 역사상 북부지역 경제발전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옛날 이곳의 땅 여러 곳에 외적을 방어하는 울타리를 설치하여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단란문화길수로의 종점이자 산길과 이어지는 기점이다. 단란수로는 전체 구간이 타이베이 강변자전거길을 따라 가다 구이린로(桂林路) 수문에서 지하철 무자(木柵)역에 이르면 끝난다.
원산구(文山區)에 위치한 완팡(萬芳)은 타이베이시의 첫 지하철노선인 원후선(文湖線)이 개통된 후 중도에 완팡병원과 완팡주택단지에 역이 생기면서 완팡의 발전과 번영이 시작되었다. 단란수로의 중후단 구간으로 완팡 동측의 징메이계강변자전거길로 가면 이곳 역시 단란수로와 산길이 만나는 연접구간이다.
다핑린(大坪林)은 과거 평탄한 임지로 이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삼면이 신뎬계와 징메이계로 둘러싸여 이전에는 선박이 화물을 싣고 내리던 중요한 도선장이었다.